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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준 포스코 회장 Smart POSCO로 전환, ‘새로운 미래 50년’ 준비하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지난 3월 10일 정기주주총회와 이사회를 거쳐 포스코의 새로운 3년을 이끌 수장으로 연임에 성공하며, 두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2014년 8대 포스코 회장에 취임한 권 회장은 첫 임기 3년 동안 철강본원경쟁력 및 재무건전성 강화, 그룹 구조재편 등을 중점적으로 추진해 기업체질을 강건화하고 수익성을 크게 개선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CTO(Chief Technology Office) 출신인 권 회장은 기술연구소장, RIST원장 등을 역임한 철강기술전문가로 포스코의 World Best, World First 기술개발을 주도해 독점적인 기술경쟁력을 확보했고 취임 후 하드웨어인 강재와 이용기술, 상업적 지원, 휴먼솔루션 등 소프트웨어 요소를 결합하는 솔루션마케팅을 대대적으로 추진해 큰 성과를 거뒀다. 권 회장은 새로 시작된 3년의 임기동안 Smart POSCO로의 체제전환(Smart Transformation)을 통해 새로운 미래 50년을 준비한다는 포부를 밝혔다. 철강사업은 기술과 원가를 리딩하는 글로벌 No.1 철강사의 위상을 확고히 할 방침이다. 생산부문에선 AI, Big Data, IoT 등 스마트기술을 활용한 Smart Factory 적용을 통해 원가경쟁력을 더 강화하고, 판매부문에선 WP+전략을 통해 수익성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할 방침이다. 에너지와 소재분야의 차별화 역량을 기반으로 신성장동력을 마련한다는 구상도 밝혔다. 특히 리튬전지 전극소재, 자동차/항공용 경량소재, 신재생에너지 분야를 집중 육성할 계획이다. 그룹사업은 Smart Technology를 활용해 수익창출형 Biz 모델로 전환한다. 그룹사업 Domain Excellency와 ICT기술을 결합, 차별화 역량을 확보하는 한편, 그룹사간 밸류체인을 연결, 시너지를 제고할 수 있는 방안도 추진한다. 또 창의와 협력의 조직문화를 진작해 Smart Transformantion의 성공적인 안착과 성과창출을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취임 후 경영위기 극복에 앞장서다 2014년에 취임한 권 회장은 ‘위대한 포스코를 창조하자’는 의미의 ‘POSCO the Great’를 새로운 비전으로 제시하며 국가경제 발전에 지속적으로 기여하고 국민들로부터 사랑받고, 끊임없이 새로운 가치를 인류에게 제공해, 세계인으로부터 존경받는 기업이 될 것을 천명했다. 이를 위해 윤리·화목·창의·일류경영 등 4대 경영이념을 기반으로 철강본원경쟁력 강화, 사업구조혁신 가속화, 신성장사업의 가시적 성과창출, 윤리기반의 경영인프라 구축을 4대 혁신 아젠다로 삼아 ‘혁신 POSCO’를 의욕적으로 추진해왔다. 철강본원경쟁력 강화를 위해 월드프리미엄제품 판매확대 및 기술과 마케팅을 융합한 솔루션마케팅을 적극 추진했다. 그 결과 월드프리미엄제품 판매량이 2014년 약 1천만톤에서 2016년 1천6백만톤으로 50% 이상 누적 성장했고, 솔루션마케팅 연계 판매량도 같은 기간 130만톤에서 390만톤으로 3배 가량 늘었다. 또 포스코 고유기술에 기반한 월드퍼스트제품 판매량도 2015년 210만톤에서 2016년 260만톤으로 증가했다. 사업구조혁신을 가속화하며 취임 당시 세운 149건의 구조조정 목표를 차질 없이 진행해 지난해 말 기준으로 126건의 구조조정을 완료했다. 이를 통해 5조8천억원의 누적 재무개선 효과를 거뒀다. 취임 직전인 2013년 2조2천억원이던 영업이익을 지난해 말 2조6천억원으로 19% 증가시켰고, 같은 기간에 영업이익률도 7.3%에서 10.8%로 늘어 5년만에 영업이익률 두 자리 수를 회복했다. 재무건전성도 획기적으로 개선돼 취임 후 3년간 순차입금을 7조1,000억원 줄임으로써 연결기준 부채비율을 74.0%로 낮췄다. 특히 포스코 별도 부채비율은 17.4%로 창사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연결기준 차입금은 전년대비 2조5,152억원 감소했다. EBITDA 대비 조정차입금비율도 2014년 3.8배에서 2016년 2.9배로 개선시켰다. 국제 신용평가기관의 평가도 좋아졌다. 지난해 10월 무디스가 포스코의 장기 기업신용등급 ‘Baa2‘에 대한 전망을 ‘부정적’에서 ‘안정적’으로 상향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장기 기업신용등급 ‘BBB+’에 대한 전망을 ‘부정적’에서 ‘안정적’으로 상향조정했다. 포스코 주가도 52주간 꾸준히 신고가를 경신해 지난 1년 동안 약 60% 상승했다. 신성장사업에서도 가시적인 성과를 실현했다. 전기차, 노트북, 휴대폰 배터리의 필수소재인 탄산리튬 추출기술 상용화에 성공해 독자 기술개발 7년만인 지난 2월 광양에 연산 2500톤 규모의 리튬 추출공장 PosLX를 준공하고 가동에 들어갔다. 또 용량과 수명 및 안정성이 대폭 개선된 이차전지 소재 ‘고용량 양극재, PG(POSCO Gradient)-NCM(Nickel Cobalt Manganese)’ 양산 및 공급에 성공해 큰 주목을 받았다. 현재까지 니켈 80% 이상 고용량 양극재(NCM 방식) 양산이 가능한 업체는 전 세계적으로 포스코를 포함해 두 곳뿐이다. 또 윤리기반의 경영인프라를 구축해 윤리를 경영의 최우선에 뒀다. 특히 ‘금품수수, 횡령, 성윤리 위반, 정보조작’을 4대 비윤리행위로 정하고 철저히 근절했다. “현장에 답 있다” 솔루션마케팅으로 고객가치 증대시키다 권 회장은 현장중심 경영으로 위기극복에 팔을 걷어붙였다. 취임 후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를 시작으로 해외사업장을 잇따라 방문해 현장직원들을 격려했다. 2014년 3월 14일 포항제철소에서 작업복 차림으로 취임식을 가졌던 권 회장은 평소 임직원들에게 “현장에 답이 있다”고 강조해왔고 취임 직후부터 포항·광양제철소는 물론 포스코엠텍, 포스코켐 등 주요계열사 사업장도 수시로 찾았다. 특히 솔루션마케팅을 강조하며 국내 주요 자동차사와 조선사들을 직접 찾았다. 기술 솔루션마케팅이란 고객에 대한 기술지원과 마케팅활동을 통합한 것으로 고객이 필요한 솔루션을 공급하고 이를 통해 고객가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런 솔루션마케팅의 일환으로 권 회장은 국내 주요 자동차사를 직접 찾아가 기술전시회를 열고, 고객사를 포스코센터로 초청해 신차를 전시·시승하는 등 공동프로모션으로 고객사와 포스코의 글로벌경쟁력 강화라는 공동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기술 및 마케팅 교류를 적극 확대했다. 철강기술전문가인 권 회장은 포스코의 기술개발을 주도해왔다. RIST 강재연구부 열연연구실장과 기획부장을 지내며 열연제품 품질개선에 심혈을 쏟았다. 권 회장이 입사했을 당시 포스코는 품질기술력 확보에 전력을 펼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초 포항 4기 설비가 종합준공돼 대량생산체제로 전환됨에 따라 기술개발능력 확충과 품질관리기능 고도화가 필요했고 고품질, 고생산성, 저원가 달성을 위한 품질관리체제가 이때부터 대대적으로 구축됐다. RIST도 예외가 아니었다. 고품질의 열연제품이 나오기 위해선 첫 단추인 연구개발 단계에서부터 완벽하게 품질관리가 이뤄져야 했다. 권 회장은 당시 열연의 품질을 좌우하는 재질예측제어기술을 연구해 품질을 높이고 비용을 절감하는데 공헌했다. 철강시장을 읽고 미래전략에 필요한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는 기술개발 철학을 정립한 것도 이때쯤이다. 이후 기술연구소 부소장과 기술연구소장, RIST 원장 등을 거치며 박판 전문가로 명성을 쌓았고 2012년 기술총괄 사장으로 선임됐다. 포스코의 핵심 수익원인 자동차강판, 전기강판, 에너지용 강재, 선재 등 고부가가치 강(鋼)을 개발하고 공정기술을 개선하는데 권 회장의 연구실적과 노력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그 중에서도 2000년 초부터 심혈을 기울인 자동차강판은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자랑한다. 기술+마케팅 접목한 새로운 혁신경영모델 기대하다 공학박사인 권 회장은 신제철기술인 ‘파이넥스공법’을 상용화하는데 기여하고 염수(鹽水)에서 배터리의 필수소재인 리튬을 추출하는 기술도 개발했다. 당시 권 회장이 다방면에 걸쳐 기술을 개발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지적 호기심’과 문제의 핵심을 꿰뚫는 ‘통찰력’에서 찾을 수 있다. ‘기술지상주의자’인 권 회장은 근본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는다. 포스코의 근본은 철이다. 업황 침체로 모든 철강사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철을 기본으로 차별화된 기술을 구현하면 생존할 수 있다고 강조해왔다. 그렇다고 권 회장은 한 자리에 앉아 연구에만 몰두하는 기술인에 머물지 않는다. 직접 문제를 찾고 행동으로 옮겨 사업화까지 고민한다. “산업 내 기술융합뿐 아니라 산업간 기술장벽을 넘어 고객이 만족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권 회장의 지론이다. 권 회장은 각종 특허와 발명 성과로 장영실상(1996년), 대한금속학회상(1996년), 기술경영인상(2013년), The Korea Society ‘Van Fleet Award’(2016년),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2016년) 등을 수상했다. 최고과학기술인상 수상 직후 기부의사를 밝히며 “창조경제의 본질은 일자리창출이고 기관별로 청년창업, 벤처기업 지원 등에 활용돼 차세대 청년들에게 일자리와 함께 꿈을 제공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상금 3억원 전액은 포스텍과 한국공학한림원, 서울대에 각각 1억원씩 헌납됐다. ‘자사주매입’ 및 ‘분기배당제’ 도입하다 포스코는 2015년 10월부터 구조조정, 재무구조 개선활동 등의 책임 있는 완수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그룹 내 임원들의 주식매입 프로그램과 ‘분기배당제’를 도입했다. 포스코그룹 임원은 매월 급여의 10% 이상 규모로 포스코, 포스코대우, 포스코켐텍, 포스코ICT, 포스코엠텍, 포스코강판, 포스코플랜텍 등 그룹 내 7개 상장사 중 1개사의 주식을 매입해왔다. 이와 함께 포스코는 지난해부터 국내 대기업 최초로 분기배당제를 도입했다. 분기배당제를 도입해 투자자는 배당금의 지급주기가 단축됨에 따라 배당에 대한 불확실성이 축소되고, 실질 배당수익률을 향상시키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특히 지난해 대폭 개선된 실적과 함께 강화된 주주가치 제고 활동으로 시장신뢰를 꾸준히 회복했고 주가는 52주간 꾸준히 신고가를 경신해 지난해 60%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직선적이고 강직, 미사여구 없고 표현 간결하다 포스코의 신성장을 주도하는 권 회장은 1950년 경북 영주시 하망동(속칭 향교골)에서 검교공파 34세손 권영건(寧建)의 4남 1녀 중 셋째(2남)로 태어났다. 부친은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며 자식들을 엄하게 훈육했다. 권 회장이 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이하 서울사대부고)를 다닐 때, 부친의 사업이 어려워져 등록금조차 마련하기 힘들었다. 빠듯한 살림이었지만 권 회장의 부모는 5남매를 모두 명문인 서울사대부고에 보낼 정도로 열의가 대단했다. 이런 교육열은 부모의 부지런함과 절약정신에서 나왔다. 칼국수와 해장국이 어린 시절, 가족의 유일한 외식메뉴였고 혹시라도 비싼 것을 먹으려고 하면 ‘부자연습하나’라며 만류했다. 부친은 매일 새벽 5남매를 깨워 영주 철탄산까지 함께 달렸다. 신문의 광고지를 모아 연습장을 만들고 교훈을 적어 자녀들에게 나눠주며 몸소 근검절약을 가르쳤다. 특히 어머니의 교육열은 남달랐다. 평소엔 자애롭지만 자식들이 숙제를 제대로 못할 때는 불호령을 내리는 ‘타이거 맘(tiger mom, 자녀를 혹독하게 교육하는 엄마)’이었다. 집안일로 분주했지만 어머니는 저녁마다 5남매의 숙제지도를 했는데 그 시간이 때론 ‘공포’였다고 한다. 자식들이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면 본인이 더 억울해 했고 어떤 날은 아궁이에 책을 집어던진다고 하거나 공부하기 싫으면 지게를 줄 테니 나무나 해오라고 하는 등 ‘충격요법’을 써 훈육했다. “어머니가 책을 태우려고 할 때 울면서 잘하겠다고 매달린 후 다시 책을 펴 문제를 풀면 척척 풀려 신기했다”고 권 회장과 형제들은 그 시절을 회고한다. 권 회장의 어머니는 하숙과 전세로 살림을 꾸리는 형편에도 자녀들의 학비를 미루는 법이 없었다. 서울을 다녀올 땐 스테인리스 스틸 식기를 잔뜩 사와 동네 주부들에게 팔았고 닭과 돼지를 키워 다섯 자녀의 등록금을 댔다. 권 회장은 의사표시가 분명한 직선적인 스타일이다. 사람을 대할 때 미사여구(美辭麗句)가 없고 표현이 간결하다. 성품도 온화하고 차분하지만 목표를 정하면 반드시 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외유내강’형이다. “한번 목표를 정하고 계획을 세우면 집요할 정도로 몰입해 반드시 실행하는 친구였다.” 학창 시절 친구들은 권 회장을 그렇게 기억한다. 공부하겠다고 정한 시간에는 제 살을 꼬집으며 집중했고 운동하겠다는 목표를 정하면 상급학교 진학 입시를 며칠 앞두고도 농구공을 들고 운동장에 나갔던 친구라는 게 지인들의 한결같은 기억이다. 자식을 위해 헌신해 온 부모는 권 회장에게 커다란 자극이 됐고 ‘공부만이 살길’이라는 동기를 부여했다. 1965년 권 회장이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당시, 우리나라는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수립해 건설과 중화학을 중심으로 산업을 일으켰다. 특히 철은 ‘산업의 쌀’로 불리며 가장 중추적인 산업으로 각광받았다. 권 회장이 철(鐵)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였다. 학업성적이 뛰어난 권 회장은 자연스럽게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목표로 삼았고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 권 회장이 고등학교를 졸업했던 1968년은 우리나라 최초의 일관종합제철소인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현 포스코)가 설립된 해이기도 하다. 권 회장은 자기관리가 철저하다. 일례로 2008년 12월 조선일보 부음란에 실린 부친상 부고에 직함이 그냥 ‘회사원’으로 돼있다. 당시 포스코기술연구소장이었지만 수많은 협력사가 조문하러 오고 이로 인해 불필요한 잡음이 생기는 것을 꺼린 권 회장은 당시 일부러 직함을 밝히지 않았다. 주변을 너무 깔끔하게 관리하는 탓에 권 회장의 경영 경험부족을 우려하는 일부의 시각도 있었지만 포스코 회장에 내정됐을 당시 민동준 연세대공대학장은 “권 내정자는 10년 전부터 ‘철강공급과잉’을 이겨낼 유일한 방법은 ‘포스코만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갖는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그가 일관성을 지킨다면 경영도 잘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목표 반드시 이루는 철인(鐵人) 서울대 금속공학과 재학 당시 ‘최고의 엔지니어’가 되겠다고 결심한 권 회장은 졸업 무렵, 미국 철강산업의 본산인 US스틸이 있는 미국 피츠버그대 유학을 희망했다. 그러나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계획을 미뤘다. 우선 군복무를 마치고 국방과학연구원(ADD)에서 3년 정도 근무하면서 유학비용을 마련했다. 이후 진학한 곳은 피츠버그대가 아니었다. 장학금을 제안한 캐나다 윈저대였다. 윈저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권 회장은 다시 피츠버그대에 도전했고 결국 금속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로 다른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는 것은 같은 대학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몇 배 이상의 노력과 도전이 필요한 일이었다. 유학시절 US스틸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피츠버그의 경제가 쇠락하는 현장을 직접 목격한 권 회장은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피츠버그는 US스틸이 있는 철강도시였다”며 “기업이 없어지면 도시가 망하고, 결국 나라가 위태로워진다”고 말한다. 권 회장이 산업의 존재이유가 국가와 도시를 살리는 것이라고 깨달으며 “기업은 국가와 사회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신념을 형성한 것도 이때였다. 박사학위를 받은 권 회장은 1986년 포스코에 입사했다. 몇몇 대학에서 교수직 제안을 받았지만 생산현장에서 연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포스코를 택했다. 권 회장은 “생산과 연구가 서로 시너지를 갖고 병행돼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여기에는 연구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박태준 명예회장의 영향도 받았다. 박 명예회장은 제철보국과 교육보국의 가치를 세우고 인재영입과 육성에 적극 나섰다. 그 결과 광양제철소 1기 설비 건설이 한창이던 1986년 포항공대(포스텍)를, 이듬해 산업과학기술연구소(현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를 설립해 포스코-포항공대-RIST를 3개 축으로 하는 산학연 연구개발체제를 완비했다. 권 회장은 이 시기에 핵심 연구인력으로 포스코로 영입됐고, 이듬해인 1987년 RIST가 출범하자 원년 연구원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2017. 4. 25. https://blog.naver.com/ha9038/220991973627
입력 2024. 12. 13. 02:26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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