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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위기극복 사례
누구에게나 위기는 찾아온다. 리더도 마찬가지다. 리더에게 위기가 찾아오면 해당 조직은 엄청난 혼란에 빠지고 지속성장에 심대한 경고등이 켜진다. 그래서 리더에게 위기가 찾아오면 최대한 발 빠르고 명확하게 그 원인을 진단하고, 극복할 수 있는 최적의 솔루션을 과감하게 실행해야 한다. 본지는 창간 15주년을 맞아 리더의 위기극복 사례를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위기에 빠진 리더가 활용할 수 있는 솔루션들을 제시한다. # 스티브 잡스 애플 전 CEO 혁신·비전·결단력, 세계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으로 성장시키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을 창립하고 수차례 위기를 맞이했지만 혁신·비전·결단력을 바탕으로 애플을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그의 리더십과 위기극복능력은 단순히 제품을 성공시키는 것을 넘어 애플의 브랜드가치와 문화적 영향력까지 변화시켰다. 첫 번째 퇴출과 복귀, 그리고 아이폰 혁신 애플은 1980년대 중반까지 순조로운 성장을 이뤘지만 1985년 내부갈등과 경영분쟁으로 인해 잡스는 애플을 떠났다. 당시 잡스는 매킨토시 프로젝트 실패와 애플의 경영방침에 대한 불만으로 공동창립자인 존 스컬리와 충돌했고 결국 애플에서 쫓겨났다. 애플을 떠난 잡스는 넥스트와 픽사를 창립했다. 고급 컴퓨터를 만든 넥스트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기술은 나중에 애플로 돌아가게 되는 중요한 자산이 됐다. 픽사는 애니메이션 영화제작사로 토이 스토리 등 성공적인 작품을 만들어내며 큰 성장을 이뤘다. 이 시절 잡스는 리더십과 혁신적 아이디어를 성숙시키며 사업가로서의 소중한 경험을 쌓았다. 잡스는 애플을 인수한 이듬해인 1997년 애플에 복귀했다. 당시 애플은 심각한 재정위기와 조직혼란에 빠져 있었다. 1990년대 중반 마이크로소프트와의 경쟁에서 밀렸고 제품혁신이 부족하고 재정적 어려움에 시달렸다. 주식은 급락하고 시장에서의 존재감도 추락했다. 잡스는 비전과 혁신을 강조하며 재건에 필요한 다양한 전략을 펼쳤다. 제품라인을 단순화하고 효율적인 비용절감과 강력한 브랜드이미지를 구축했다. 아이맥 출시로 단순하면서도 디자인이 뛰어난 제품으로 시장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아이맥으로 존재감을 되찾은 애플은 이후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의 혁신제품들을 선보이며 세계 최고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2007년 아이폰 출시 당시 블랙베리, 모토로라, 노키아 등이 스마트폰시장을 지배하고 있었다. 아이폰은 새로운 도전자였고 애플이 모바일시장에서 성공할지 여부는 불투명했다. 잡스는 아이폰을 혁신적인 멀티미디어 기기로 개발했다. 터치스크린 기반의 직관적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애플의 생태계(앱스토어, 아이튠즈 등)를 활용한 원스톱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면서 아이폰은 대중의 관심을 끌었고 애플은 스마트폰 혁명을 주도했다. 글로벌 브랜드화 애플은 기술회사로 시작했지만 시장 내에서의 경쟁심화와 제품차별화 부족으로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당시 애플은 소비자들로부터의 브랜드신뢰도가 부족했고 기술적인 면에서는 경쟁사들에 뒤처져 있었다. 잡스는 애플을 단순한 기술 회사에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변모시키는 데 집중했다. 디자인, 품질, 혁신을 강조하며 애플 제품을 소유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경험이자 아이코닉한 라이프스타일로 여겨지도록 만들었다. 그의 비전은 애플 스토어, 애플의 독특한 광고캠페인, 그리고 제품디자인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이로 인해 애플은 가장 강력한 브랜드 중 하나로 성장했다. # 엘론 머스크 테슬라 CEO 위험 감수, 위기를 기회로 바꾸다 엘론 머스크는 여러 위기 상황에서 비전과 리더십을 통해 회사를 재건하고 글로벌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그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능력을 발휘했고 스페이스X와 테슬라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혁신적인 기업문화와 미래지향적인 비전을 만들어나간다. 자금부족·생산지옥, 그리고 SNS 발언으로 인한 리스크 스페이스X는 2000년대 초, 연이어 발사 실패를 경험했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로켓 발사가 실패했고 자금을 받을 곳이 없었다. 우주비행에 대한 민간기업의 신뢰도 부족했다. 머스크는 개인 자산을 투자해 스페이스X를 살리기 위한 마지막 시도를 단행했다. 2008년 12월, 스페이스X는 네 번째 발사를 성공시키며 첫 번째 상업적 로켓 발사에 성공했고 NASA와 계약했으며 NASA의 민간우주 발사 서비스 공급업체로 격상됐다. 이 성공이 스페이스X를 우주탐사 혁신기업으로 성장시켰고 이후 재사용 가능한 로켓(Falcon 9)과 민간우주여행을 현실로 만들었다. 2017년과 2018년, 테슬라는 모델 3의 대량생산 문제로 위기에 직면했다. 모델 3는 대중 전기차로 자리매김하려 했지만 생산설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부품공급에 문제가 생기며 생산지옥이라는 조롱까지 받았다. 생산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서 자금흐름도 악화됐고, 투자자들은 테슬라의 미래에 대한 불안을 표출했다. 머스크는 생산지옥을 인정하고 생산라인 개선 작업에 직접 참여했다. 인력과 기술 조합을 활용해 생산속도를 높였다. 자금조달을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며 회사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추진했다. 결국 2018년 말, 모델 3 생산목표를 달성하며 테슬라는 수익창출단계로 돌입했다. 2018년, 머스크는 트위터에서 “모든 테슬라 주식을 420달러에 상장폐지할 계획”이라며 증권거래위원회(SEC)와의 법적분쟁에 휘말렸다. 이 발언은 투자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증권 규제 당국은 이를 시장조작으로 간주했다. 그 결과 머스크는 SEC와 합의해 벌금을 내고 테슬라의 CEO로서의 직무와 관련된 여러 규제를 받았다. 머스크는 법적 문제를 해결한 후, 자신의 발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주주들과의 소통을 강화하며 테슬라의 장기 목표에 집중했다. 또 그의 기술적 혁신과 비전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줬고 테슬라의 성장을 위한 지속적인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었다. 공격적인 성장전략 테슬라는 공격적인 성장전략을 추진하면서 큰 부채와 고위험 사업 모델을 운용하고 있었다. 투자자들은 과도한 투자와 지속 가능한 수익성 부족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고 테슬라는 일시적인 자금 유동성 문제와 불확실성을 겪고 있었다. 머스크는 단기적인 어려움을 감수하면서도 장기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그는 테슬라가 지속 가능한 에너지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는 비전을 갖고 대규모 생산시설과 글로벌시장 확장을 지속적으로 추진했고 이를 통해 미래성장성을 더 키우고 있다. # 잭마 알리바바 창립자 혁신, 정부와의 관계관리 등 뛰어난 전략 구사하다 잭마는 알리바바 설립 초기의 자금부족과 시장 불신, 정부의 규제와 경쟁의 압박 등 여러 위기를 맞이했지만 끊임없는 혁신과 비전으로 극복했다. 그는 전자상거래, 금융서비스, 클라우드 컴퓨팅 등 다양한 산업에서 알리바바를 글로벌 리더로 성장시켰다. 잭마의 성공은 리더십, 지속적인 혁신, 시장이해와 정부와의 관계관리에 대한 뛰어난 전략을 통해 이뤄졌다. 자금 부족과 투자자의 의심, 경쟁사의 위협 알리바바는 1999년 잭마가 중국에서 중소기업을 위한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 창립한 회사다. 그러나 초기 자금이 부족하고 중국의 인터넷 환경도 낙후돼 있었다. 중국 정부의 규제와 중소기업들이 인터넷을 활용하지 않는 상황에서 투자자들은 알리바바의 성공 가능성에 큰 의심을 품었다. 비전을 믿고 투자자들을 설득한 잭마는 1999년 첫 투자를 유치했고 제리 양을 포함한 해외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확보했다. 특히 야후가 알리바바에 10억 달러를 투자하면서 본격적인 사업 확장 기반을 마련했다. 2003년에는 국내 경쟁이 치열해졌다. 텐센트와 징둥을 포함한 경쟁사들이 등장하면서 시장에서 압박을 받았다. 특히 알리바바의 전자상거래 플랫폼은 타오바오(Taobao)로 확장됐지만 이 시장에서 경쟁이 심화됐다. 잭마는 가격전쟁을 통해 알리바바와 타오바오의 경쟁력을 강화시켰다. 판매자에게 수수료를 받지 않겠다며 고객과 판매자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모델을 선택했다. 이로 인해 타오바오가 빠르게 성장했고 알리바바는 중국에서 가장 큰 전자상거래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다. 또 SNS와 온라인 결제 시스템을 포함한 e커머스 생태계를 구축해 경쟁에서 우위를 점했다. 알리페이는 초기에 중국 정부의 규제를 피하기 어려웠다. 금융 서비스와 관련된 법적 문제와 정부의 규제에 직면했다. 중국 중앙은행의 규제를 받지 않으면 불법 결제 시스템으로 간주될 위험이 있었다. 잭마는 알리페이의 법적 구조를 독립된 법인으로 전환시키며 정부 규제를 해결했다. 알리페이는 엄격한 규제를 준수하면서도 혁신적인 결제시스템을 제공할 수 있었고 중국 내에서 결제산업을 혁신하면서 온라인 결제 시장을 장악했다. 이를 통해 알리페이는 중국의 전자결제시장을 선도하며 영역을 글로벌시장으로 확장했다. 중국 정부와의 관계 중국 정부와의 관계는 알리바바에게 지속적인 위협요소가 될 수 있었다. 잭마가 자유시장을 지향하는 비전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강력한 규제와 간섭이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특히 개인정보보호, 전자상거래 규제 등과 관련한 정부와의 충돌은 성장에 큰 장애물이 될 수 있었다. 잭마는 중국 정부와의 긴밀한 협력을 유지하면서도 알리바바의 독립성을 지키는 방법을 찾아냈다. 정부의 규제에 적극 대응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으로서의 이미지를 강화해 중국 정부와의 협력을 이어갔다. 또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중소기업을 돕고 농촌 경제 활성화 등을 위한 사업을 추진해 정치적 위기를 극복했다. # 인드라 누이 펩시코 전 CEO 혁신적 사고와 효율적 경영전략으로 위기 극복하다 인드라 누이(Indra Nooyi)는 펩시코의 글로벌화, 건강지향적 변화, 사회적 책임 등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펩시코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그는 혁신적 사고와 효율적인 경영전략을 바탕으로 비전을 제시하며 위기를 합리적으로 극복했다. 건강지향적 변화, 지역맞춤형 글로벌진출 구사 2000년대 초반, 펩시코는 탄산음료와 스낵 중심 제품 포트폴리오로 건강문제와 관련된 비판에 직면했다. 설탕과 나트륨이 많이 포함된 제품들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비판을 받으며 소비자들의 관심이 건강제품으로 옮겨갔다. 펩시코의 기존 제품들이 건강 트렌드에 뒤처지며 매출감소가 우려됐다. 그는 펩시코의 음료와 스낵 제품을 건강지향적 제품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저칼로리, 저당, 저염 제품 개발에 집중했다. 또 천연재료를 사용한 제품을 강화하며 음료뿐 아니라 건강간식에도 진출했다. 더불어 브랜드이미지를 건강지향적으로 재편성하며 지속가능하고 책임감 있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했다. 펩시코는 글로벌화 전략을 추진하면서 다양한 문화와 시장에서 맞춤형 제품을 제공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아시아시장에선 펩시코의 브랜드가 잘 알려지지 않았고 현지 경쟁자들의 강력한 입지로 인해 성장이 어려웠다. 또 중남미, 아프리카 등에서는 펩시코의 기존 제품 라인이 소비자들에게 맞지 않아 매출 확대가 어려웠다. 그는 글로벌전략을 지역맞춤형 전략으로 수정해 각 지역의 문화와 소비자 선호를 반영한 제품을 출시했다. 아시아시장에선 저칼로리 음료와 현지화된 스낵을 출시하고 미국시장에선 건강지향적 음료와 스낵을 강화했다. 또 글로벌 브랜드 강화와 지역별 제품혁신을 통해 각국에서 펩시코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였다. 이로 인해 펩시코는 중남미와 아시아시장에서 큰 성장을 거뒀고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입지를 더 공고히 다졌다. CEO직 퇴임과 후임 리더십 전환 2018년, 인드라 누이는 펩시코의 CEO직을 퇴임하며 후임 CEO로 록타르 사드르를 지명했다. 퇴임을 앞두고 내부의 리더십 변화와 전략에 대한 불확실성이 있었다. 또 새로운 리더가 회사를 이끌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존재했다. 그는 자신의 리더십을 안정적으로 전달하며 후임 CEO에게 전략적 조언과 지원을 제공했다. 그는 펩시코의 지속적인 성장과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핵심가치와 전략을 후임에게 명확히 전달했고 강력한 리더십 전환 과정을 통해 불확실성을 최소화했다. 그는 후임 CEO가 펩시코를 계속 성장시키고 혁신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식으로 회사를 떠났다. 한편 그는 펩시코의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며 회사의 지속가능성 전략을 강화했다. 그는 재활용 가능한 포장지, 저탄소 배출 및 지속 가능한 공급망 등을 구축하는 데 중점을 뒀고 지역 사회 기여와 식품안전성에 대한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하며 펩시코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변화시켰다. #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회장 과감한 사업모델 변화, 미래 위한 전략적 비전 추구하다 넷플릭스(Netflix)의 공동 창립자인 리드 헤이스팅스는 전통적인 DVD 대여 서비스에서 디지털 스트리밍 서비스로 혁신시키며 여러 위기를 극복했다. 그는 글로벌 확장, 콘텐츠 혁신, 기술 기반의 맞춤형 서비스 제공 등을 통해 넷플릭스를 세계 최고의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성장시켰다. 그의 리더십은 과감한 사업 모델 변화, 위기에 대한 빠른 대응, 미래를 위한 전략적 비전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스트리밍 서비스 도입, 국제 시장 진출과 문화적 장벽 넷플릭스는 DVD 대여 서비스로 성장했지만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한계에 직면했다. 인터넷 대역폭 증가와 스트리밍 기술 발전에 따라 소비자들은 더 이상 물리적인 DVD를 대여하는 대신 온라인 스트리밍을 선호했다. 이는 넷플릭스의 기존 사업 모델에 큰 위기를 초래했다. 헤이스팅스는 즉각 스트리밍 서비스로의 전환을 추진했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2007년에 본격적으로 론칭하며 온라인 콘텐츠 스트리밍의 가능성을 믿고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DVD 대여 서비스에서 벗어나 디지털 콘텐츠와 인터넷 스트리밍에 집중했고 기존의 사업모델을 과감히 전환했다. 비록 초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스트리밍 서비스의 수용에 회의적이었지만 그는 미래의 방향을 확신하고 사업을 과감하게 디지털화했다. 넷플릭스는 미국 내에서 큰 성공을 거뒀지만 국제시장으로의 확장은 또 다른 도전이었다. 각국의 문화적 차이, 언어장벽, 저작권 규제 등 다양한 장애물이 있었기 때문에 넷플릭스의 글로벌 확장은 어려운 과제가 됐고 다른 나라에서의 경쟁자들도 넷플릭스의 성장을 가로막았다. 헤이스팅스는 국제화전략을 공격적으로 추진했다. 글로벌시장에 맞는 콘텐츠를 확보하고 현지화 전략을 강화해 각국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는 맞춤콘텐츠를 제공했다. 또 현지 법규와 저작권 규제를 준수하는 방식으로 글로벌 확장을 계속했고, 인터넷 기반의 글로벌 서비스로서의 장점을 활용해나갔다. 이 덕분에 넷플릭스는 미국 외 지역에서도 빠르게 성장했고 2016년에는 130개국 이상으로 서비스를 확장했으며 현재는 190개국 이상에서 서비스 중이다. 수익 모델 변화, 광고 기반 서비스 도입 넷플릭스는 프리미엄 구독 모델을 기반으로 성장했지만 구독자 성장률의 둔화와 경제적 불확실성으로 인해 새로운 수익 모델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특히 경기 침체나 가격인상에 대한 부담 때문에 구독자가 감소할 가능성이 커졌다. 위기를 직감한 헤이스팅스는 발빠르게 광고 기반 모델을 도입해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하기 시작했다. 2022년, 넷플릭스는 광고가 포함된 구독 서비스를 론칭하며 저렴한 가격으로 광고가 포함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시장확대를 꾀했다. 이 새로운 전략은 광고주들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추가적인 수익을 올리고 구독 모델에 적합한 다양한 옵션을 제공해 시장 수요를 만족시켰다. #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 빠른 대응, 미래 향한 비전, 조직문화 혁신 추진하다 사티아 나델라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위기극복과 혁신을 이끌며 클라우드와 AI 중심의 글로벌 기술 리더로 변화시켰다. 기존의 사업모델을 전환하고 기술혁신과 기업문화 변화를 통해 마이크로소프트를 미래지향적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나델라의 리더십은 도전적 상황에서의 빠른 대응, 미래를 향한 비전, 조직문화 혁신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모바일사업 축소, 인수합병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 폰을 통해 모바일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아이폰과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에 밀려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로 인해 모바일 운영체제와 관련된 사업은 핵심사업에서 점차 밀려났다. 나델라는 모바일 시장에서의 실패를 인정하고 모바일 하드웨어사업에서 철수했다. 대신 클라우드 컴퓨팅과 엔터프라이즈 서비스에 집중하는 전략을 선택했고 모바일사업에 대한 의존도를 줄였다. 또 윈도우 폰의 실패를 교훈 삼아 기존의 소프트웨어 중심에서 벗어나 클라우드, AI,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로 사업모델을 재편했다. 특히 Azure 클라우드 플랫폼에 집중하면서 클라우드시장에서의 강력한 입지를 구축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더불어 소비자 시장에서의 입지도 약해졌다. LinkedIn, Skype, GitHub 등의 소비자 및 기업 서비스 인수 후 이를 어떻게 잘 활용할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존재했다. 나델라가 취임한 후 마이크로소프트는 클라우드와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나갔지만 그외에도 다양한 시장에서의 위기가 지속됐다. 나델라는 인수합병을 통해 마이크로소프트의 시장입지 확장과 기술혁신을 이끌었다. LinkedIn 인수(2016년)는 사회적 네트워킹과 기업 소프트웨어를 결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고, GitHub 인수(2018년)는 소프트웨어 개발자 커뮤니티와의 연계를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는 소비자 시장에 대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접근방식을 재편하며 클라우드, AI, 생산성 도구와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었다. 또 마이크로소프트는 게임산업에서 Xbox와 Azure를 결합해 게임 스트리밍 서비스와 클라우드 기반 게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혁신을 추진했다. 이로 인해 마이크로소프트는 소비자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리더십 변화와 기업 문화 혁신 나델라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기업문화와 리더십에 큰 변화를 시도해야 했다. 기존의 마이크로소프트는 경직된 상명하달식 문화가 있었고 이는 혁신을 저해하고 직원들의 창의성을 제한하는 원인이었다. 또 협업과 개방성이 부족해 경쟁사에 비해 조직의 유연성이 떨어졌다. 나델라는 성장 마인드셋(Growth Mindset)을 강조하며 마이크로소프트의 기업문화를 혁신했다. 실패를 학습의 기회로 삼고 협업과 유연성을 중시하는 문화로 조직을 재편했다. 또 다양성과 포용성을 촉진하며 직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며 새로운 성장의 기틀을 마련했다. # 헤르베르트 디이스 폭스바겐그룹 전 CEO 기술혁신, 전략적 인수합병 통해 미래지향적 기업으로 탈바꿈시키다 헤르베르트 디이스는 디젤게이트의 늪에 빠진 폭스바겐을 구하기 위해 전기차, 디지털화, 자율주행으로의 대전환을 시도했다. 그는 기술혁신, 조직문화 변화, 전략적 인수합병을 통해 폭스바겐을 미래지향적 기업으로 탈바꿈시키며 글로벌 자동차산업의 변화를 주도했다. 디젤게이트 스캔들, 전기차시장으로의 전환 2015년, 폭스바겐은 배출가스 조작 스캔들(Dieselgate)로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이 사건은 폭스바겐의 이미지와 신뢰를 크게 훼손시켰고 막대한 벌금과 소송에 휘말렸다. 주가 하락과 소비자 신뢰도 저하 등의 결과를 초래했다. 디이스는 2018년 CEO로 취임한 후 디젤게이트의 후유증을 극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신뢰회복을 위해 환경문제에 대한 책임감 있는 태도를 강조했다. 또 전기차 전환을 가속화하고 새로운 기술혁신을 통해 환경 친화적인 자동차 개발에 집중한다고 공표했다. 디이스는 배출가스를 조작한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이를 미래의 전환점으로 삼자고 선언하며 브랜드이미지를 재건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를 취했다. 폭스바겐은 이후 전기차 시장으로의 강력한 전환을 시작했고 ID 시리즈와 같은 순수 전기차 모델을 출시해 친환경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디젤게이트 이후 폭스바겐은 전기차 시장으로의 급격한 전환을 추진했다. 전기차는 기술적인 도전과 높은 초기비용을 동반하는데다 충전 인프라 부족과 소비자들의 전환에 대한 불확실성도 큰 장애물이었다. 테슬라 같은 경쟁사들이 빠르게 자리 잡고 있어, 폭스바겐이 뒤처지지 않도록 해야 했다. 디이스는 폭스바겐의 미래는 전기차라고 선언하며 전략을 완전히 전환시켰다. 전기차 전환을 위해 ID 시리즈 같은 순수 전기차 모델을 개발하고 이를 글로벌시장에 출시하는 데 집중했다. 폭스바겐 그룹은 2025년까지 70개의 전기차 모델을 출시할 계획을 세우고 전기차 전환을 가속화했다. 또 폭스바겐은 전기차 배터리 생산과 충전인프라 구축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하며 전기차 생태계를 구축하는데 노력했다. 그는 혁신기술 개발과 생산공정 개선을 통해 전기차 제조비용을 낮추고 대중화를 촉진하는데 중점을 뒀다. 디이스의 리더십 아래 폭스바겐은 전기차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며 테슬라와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노력했다. 또 전기차 기술뿐 아니라 자율주행, 디지털화와 같은 차세대 자동차 기술에 대한 투자도 적극적으로 진행했다. 경영 구조 개혁 추진 폭스바겐은 독일의 전통적 대기업 구조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를 글로벌시장과의 빠른 대응을 위해 변화시켜야 하는 시점에 있었다. 기존의 경직된 경영구조와 조직문화는 디지털 혁신과 빠른 의사결정에 장애물이 될 수 있었다. 디이스는 경영구조개혁을 추진하며 더 유연하고 혁신적인 조직구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디지털 혁신과 새로운 기술에 적합한 조직을 구축하고, 부서 간 협업을 강화하는 한편, 글로벌기업으로서의 유연성을 확보했다. # 제프 베조스 아마존 창업자 시장변화와 기술혁신에 민감 대응, 단기위기 성장기회로 바꾸다 제프 베조스는 여러 번의 위기 속에서 아마존의 비전과 장기적인 목표를 지키며 혁신적으로 성장시켰다. 그는 시장변화와 기술혁신에 민감하게 대응하며 단기적인 위기를 장기적인 성장 기회로 바꿨다. 특히 고객중심 전략, 효율적 물류 시스템 구축, AWS 같은 혁신적인 기술투자를 통해 아마존을 글로벌기업으로 성장시키며 위기를 극복했다. 수익성 문제 AWS로 해결, 기술개발 집중 아마존은 2000년대 초반에도 수익을 내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됐으며 여러 투자자들이 장기적인 생존 가능성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베조스는 장기성장을 목표로 했지만 외부에선 아마존이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기업으로 비춰졌고 회의적인 시각이 커졌다. 베조스는 효율적인 물류 시스템을 도입해 아마존의 운영효율성을 높였다. 고객중심 전략을 계속 강화하면서 클라우드 컴퓨팅(AWS)에 대한 비전을 발전시켰다. AWS는 아마존의 주 수익원으로 자리 잡으면서 회사의 수익성을 크게 향상시켰다. 또 베조스는 아마존을 장기적인 혁신기업으로 만들어가며 단기적인 수익성보다 미래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기술개발에 집중했다. AWS는 이후 아마존의 가장 중요한 수익원으로 자리잡았다. 클라우드 컴퓨팅은 아마존의 성장을 촉진하며 아마존을 기술혁신 기업으로 재정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마존은 전자상거래와 클라우드 서비스 시장에서 기존 경쟁자들(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월마트 등)과의 치열한 경쟁에 직면했다. 또 온라인 쇼핑 시장의 포화와 성숙기 진입으로 인해 성장속도가 둔화될 가능성이 있었다. 베조스는 아마존의 제품과 서비스 차별화전략을 강화했다. 아마존을 단순한 상거래 플랫폼이 아닌 통합적인 소비자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성장시켰다. Amazon Echo와 Alexa 같은 인공지능(AI) 기반 제품을 출시하며 스마트 홈 시장에 진출했고 아마존 프라임을 통해 디지털 콘텐츠 및 스트리밍 서비스로 영역을 확장했다. 또 Whole Foods 같은 오프라인 매장을 인수해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융합하는 전략을 추진했다. 베조스는 AWS를 포함한 다양한 서비스와 제품을 통해 아마존을 종합적인 테크 기업으로 발전시키는 데 주력했다. 물류 인프라 강화, 직원 안전 우선시 COVID-19 팬데믹은 전 세계 경제와 소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비대면 쇼핑 급증, 물류와 공급망 차질 등이 발생하며 아마존은 기존의 물류시스템에 대한 압박을 받았다. 또 필수 직원과 운영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고 팬데믹으로 비즈니스 모델의 재정립이 필요해졌다. 베조스는 온라인 쇼핑 급증에 발맞춰 아마존의 물류 인프라를 강화하고 직원들의 안전을 우선시하는 조치를 취했다. 아마존의 물류 시스템을 확장하고 사회적 거리두기와 같은 보건지침을 준수하며 배송 지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운영 최적화에 집중했다. 팬데믹 기간 동안 아마존은 필수 소비재와 디지털 서비스를 빠르게 제공하면서 성장을 지속했다. 또 Amazon Web Services(AWS)의 수요증가로 인해 기술 기반 비즈니스에서의 강점을 더 강화했다. # 더그 맥밀런 월마트 CEO 소매업 미래 예측하며 기술과 디지털에 집중 투자하다 더그 맥밀런 월마트 CEO는 디지털 혁신, 온라인 쇼핑 강화, 옴니채널 전략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팬데믹 상황에서도 성장을 이어갔다. 그는 소매업의 미래를 예측하며 기술과 디지털을 적극 채택하고 물류와 배송 시스템을 혁신하면서 월마트를 글로벌 소매업계에서의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온라인 쇼핑 물류 거점으로 활용하며 옴니채널전략 적극 추진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반, 온라인쇼핑 급성장과 전자상거래 기업들의 부상으로 전통적인 소매업체들은 큰 위기에 직면했다. 월마트는 여전히 오프라인 매장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었고 이로 인해 아마존 같은 경쟁업체들과의 디지털 경쟁에서 뒤처질 위험이 있었다. 디지털 쇼핑의 급성장은 고객들의 구매 행동 변화와 소매업의 패러다임 전환을 불러일으켰고 월마트는 이에 적응하지 않으면 생존 위기에 직면할 수 있었다. 맥밀런은 CEO 취임 후 월마트를 디지털 전환을 통해 경쟁력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이끌기 시작했다. 온라인 쇼핑과 오프라인 매장의 통합을 목표로 월마트를 올인원 소매업체로 변모시키려 했다. 맥밀런은 전자상거래 부문 강화를 위해 온라인 쇼핑 플랫폼을 개선하고, 웹사이트와 모바일 앱을 통한 쇼핑 경험을 혁신적으로 업그레이드했다. 또 사물인터넷(IoT)과 AI 기반 고객 맞춤형 서비스 제공을 통해 고객경험을 혁신했다. 그는 오프라인 매장을 온라인 쇼핑의 물류 거점으로 활용하며 옴니채널(Omni-channel)전략을 적극 추진, 온라인 구매 후 오프라인 매장에서 픽업하는 시스템(BOPIS, Buy Online, Pick Up In Store)을 강화하고, 빠른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고객 편의성을 극대화했다. 맥밀런은 전자상거래와 디지털 서비스에 대한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했다. 특히 자체 클라우드 인프라를 구축하고 AI와 머신러닝을 활용해 물류 효율성을 높이고, 고객 데이터를 분석해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나갔다. 월마트는 Jet.com 인수 등으로 온라인 비즈니스를 확대했다. Jet.com은 특히 도시 지역에서 젊은 고객층을 타겟으로 하는 온라인 쇼핑몰로 이를 통해 월마트는 아마존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고급 온라인 쇼핑 전략을 강화했다. 맥밀런의 리더십 아래에서 월마트는 온라인 쇼핑과 오프라인 매장을 성공적으로 통합하고 디지털 시장에서도 점차 입지를 넓혀갔다. 월마트는 전자상거래 분야에서도 급성장을 이뤘다. 온라인 매출 급증이 그 증거다. 집에서 쇼핑하고 집으로 배송 받는 시스템 확립 2020년 COVID-19 팬데믹은 전 세계의 경제와 소비 행태에 큰 영향을 미쳤다. 많은 상점들이 문을 닫고 고객들의 쇼핑방식이 온라인쇼핑으로 급격히 전환됐다. 팬데믹 동안 월마트는 온라인 쇼핑 시스템을 강화해 집에서 쇼핑하고 집으로 배송 받는 시스템을 확립했다. 전국적인 배송 네트워크를 통해 빠르게 상품을 배송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확장했고 디지털 주문을 처리하는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했다. # 팀 쿡 애플 CEO 전략적 사고, 운영효율성 개선, 혁신제품 출시로 경쟁력 더 강화하다 팀 쿡(Tim Cook)은 애플의 CEO로서 수많은 위기를 극복하며 회사를 성장시켰다. 쿡은 스티브 잡스의 후임으로 애플의 CEO 자리에 오르면서 많은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지만 전략적 사고, 운영 효율성 개선, 혁신제품 출시를 통해 애플을 더 강력한 기업으로 변화시켰다. 특히 잡스 사망 후의 리더십이 중요한 시험대였고 글로벌 경제 위기, 스마트폰 경쟁 심화, 품질관리 문제 등 여러 위기를 능동적으로 극복했다. 스티브 잡스의 사망과 리더십 전환 2011년 잡스가 애플 CEO에서 물러나며 그가 세운 혁신적 비전과 리더십을 이어받아야 했던 쿡에게는 큰 도전이었다. 잡스의 유산과 애플의 창립자로서의 명성이 그 후임자인 쿡에게 큰 압박으로 작용했고 애플의 미래와 문화를 유지하는 것이 핵심과제가 됐다. 애플의 주가가 잡스의 사망 이후 크게 흔들릴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쿡이 잡스의 스타일을 따를 수 있을지, 또는 새로운 혁신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던졌다. 쿡은 잡스와 다른 스타일로 애플을 이끌었다. 잡스가 직선적이고 선명한 리더십을 즐겼다면 쿡은 협업적이고 팀 중심적인 리더십을 강조했다. 그는 직원들과 기술자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하며 단기 이익보다 장기 비전을 더 강조했다. 아이폰, 아이패드, 애플 워치 같은 기존의 핵심 제품을 개선하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출시했다. 애플 뮤직과 애플 페이 등이 대표 사례다. 이를 통해 수익원 다각화에 기여했다. 쿡은 잡스의 유산을 존중하면서도 그에 의존하지 않고 애플의 미래를 위해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하는 데 집중했다. 그는 혁신제품의 출시를 통해 애플을 계속 선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쿡은 잡스의 후임으로서의 부담을 자신만의 전략적 사고로 극복하고 애플을 더 성장시키는 데 성공했다. 특히 애플의 주가는 쿡의 리더십 아래 급격히 상승했고 애플은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글로벌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리더십 아래 애플은 아이폰 6 같은 혁신 제품을 출시하며 시장점유율을 더 확대했다. 아이폰 판매 둔화와 경쟁 심화 2017년 이후, 아이폰 판매가 둔화되면서 애플은 모바일시장의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경쟁 업체인 삼성전자와 화웨이 등은 가격경쟁력을 갖춘 대중적인 제품을 출시하며 애플의 시장점유율을 위협했다. 쿡은 아이폰 판매 둔화를 극복하기 위해 애플 서비스 사업을 적극 확장했다. 애플 뮤직, 애플 TV+, 애플 아케이드, 애플 뉴스 등 다양한 서비스를 출시하고 이를 통해 지속적인 수익 모델을 만들어냈다. 특히 경쟁사의 공격적인 마케팅에 휘말리지 않고 프리미엄시장에 집중하며 아이폰 가격을 상승시키고 프리미엄 모델을 강조하는 전략을 택해 경쟁사들의 공세를 이겨냈다. 아이폰 X 같은 고급 모델을 출시해 고객들의 소비성향을 반영한 전략을 펼쳤다. 아이폰 12와 아이폰 13 등을 통해 5G 기술을 채택하고 애플 실리콘 칩을 도입하는 등 혁신제품을 계속 시장에 내놓았다. # 샤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전 COO 전략적 리더십과 문제해결능력으로 지배력 더 강화하다 샤릴 샌드버그(Sheryl Sandberg)는 페이스북에서 광고 모델 혁신, 개인정보보호 문제 대응, 정치적 논란과 규제대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했다. 그는 전략적 리더십과 문제해결능력을 통해 페이스북을 더 강력한 기업으로 만들었고 이 과정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했다. 페이스북의 초기 광고 모델 도입 및 실패 페이스북이 초기에 광고 기반 모델을 도입하려 했지만 광고 수익화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사용자 데이터를 활용한 광고 모델을 처음으로 시도하면서도 광고주들과의 관계에서 신뢰를 얻지 못해 광고 수익이 저조했다. 당시 페이스북의 비즈니스 모델은 주로 개발자와 비즈니스 파트너들에 의존했고 이에 따라 수익 모델이 부실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샌드버그가 페이스북에 합류한 2008년, 그는 디지털 광고 전문가로서 광고 모델을 혁신했다. 광고주와의 신뢰를 쌓고, 페이스북의 광고 수익화 전략을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처방을 했다. 사용자 데이터를 광고 타겟팅에 활용하는 모델을 제안했다. 이를 통해 광고주는 세밀한 타겟팅이 가능해졌고 광고수익을 급격히 증가시켰다. 광고주들이 결과를 명확히 볼 수 있는 분석 툴을 제공해 광고주와의 관계를 강화했다. 이로 인해 광고주의 ROI를 개선했고 점차적으로 페이스북의 광고모델이 안정화됐다. 대기업과 브랜드 광고주와의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페이스북이 단순한 저비용 광고 플랫폼이 아닌 브랜드 광고에 적합한 플랫폼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했다. 글로벌 규제 및 정치적 논란 페이스북은 2020년대 초반, 정치적 논란과 글로벌 규제 문제에 직면했다. 특히 가짜 뉴스와 혐오발언 문제, 선거개입 의혹 등이 불거지면서 페이스북은 글로벌 차원의 규제압박을 받게 됐다. 이는 페이스북의 사업모델과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란을 일으켰다. 샌드버그는 정치적 논란과 규제의 압박을 극복하기 위해 몇 가지 주요 전략을 성공적으로 추진했다. 페이스북의 광고 정책을 강화해 허위 정보나 극단적 정치적 콘텐츠에 대한 광고를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 또 가짜 뉴스와 혐오발언에 대한 검열 강화와 사실 확인 시스템을 도입해 사용자들에게 더 안전한 공간을 제공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했다. 페이스북이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는 입장을 명확히 해 정치적 논란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그는 페이스북이 다양한 정치적 입장을 수용하지만 불법적이거나 해로운 콘텐츠는 허용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글로벌 규제 당국과 협력해 페이스북이 준수할 수 있는 규제를 마련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를 통해 페이스북은 법적 책임을 다하고 책임 있는 기업으로서의 이미지를 회복하려 했다. 샌드버그의 이같은 선명한 리더십 아래 페이스북은 정치적 논란과 글로벌 규제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페이스북은 이후 메타(Meta)로 브랜드명을 바꾸고 메타버스 같은 새로운 기술혁신에 투자하면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 안젤라 메르켈 독일 전 총리 유로존 재정위기, 난민 위기 등에 강력한 리더십 발휘하다 안젤라 메르켈(Angela Merkel)은 독일의 첫 여성 총리이자, 16년 동안 독일의 리더로서 유럽 연합(EU)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경제 위기, 유로존 재정위기, 난민 위기, COVID-19 팬데믹 등 수많은 글로벌 위기 속에서 독일을 이끌며 여러 번의 중요한 위기를 극복했다. 유로존 재정위기, 난민 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후 유로존 국가들은 심각한 재정적 어려움에 직면했다. 특히 그리스, 포르투갈, 아일랜드, 스페인 등 일부 유럽 국가들은 부채 위기와 경제 침체에 시달렸다. 유로화의 안정성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독일은 유로존 경제의 중심국으로서 유럽의 재정적 위기에 대응해야 했다. 메르켈은 위기 국가들에게 구제 금융을 제공하는 대신 긴축정책과 재정개혁을 요구했다. 특히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등은 EU와 IMF로부터 구제 금융을 받았고 메르켈은 이를 통해 유로화의 안정성을 지키고자 했다. 유럽 재정안정기구(ESM)와 유럽재정통합(Eurozone Fiscal Compact)을 통해 유로존의 재정건전성을 강화하고 위기대응능력을 개선하는 법적 장치를 마련했다. 또 유럽 중앙은행(ECB)과 협력해 금리를 낮추고 유럽 국가들 간의 재정통합을 추진했다. 긴축정책을 고수하며 위기 국가들이 재정적자 감소, 세금 인상, 공공부문 축소 등의 개혁을 통해 경제를 회복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이로 인해 사회적 저항과 정치적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그는 유로존의 장기적인 안정성을 위한 결정으로 긴축 정책을 밀어붙였다. 2015년 유럽은 중동과 아프리카에서의 난민 급증 문제에 직면했다. 특히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대규모 난민 유입이 발생하면서 유럽 각국은 난민 수용 문제로 심각한 갈등을 겪었다. 이 시점에서 메르켈은 독일의 난민수용정책을 놓고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2015년 8월, 난민 위기 상황에서 “우리는 해낼 수 있다”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통해 독일이 난민을 받아들이는 방침을 발표했다. 그는 독일이 유럽 연합 내에서 인도적 역할을 하며 난민수용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난민들에게 보호를 제공하면서 유럽 연합의 다른 국가들과 협력해 난민 분배 및 지원 시스템 구축을 논의했다. 독일은 난민들에게 기본적인 생활 보장과 교육, 의료 지원을 제공하며 이를 통합정책으로 이어갔다. 그의 난민정책은 독일 사회에서 다문화 사회와 통합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했지만 내부 반발과 정치적 논란도 일었으며, 그의 정책은 독일 내 정치적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다. COVID-19 팬데믹 메르켈의 리더십 아래 독일은 COVID-19 위기를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비교적 잘 관리했다. 빠른 봉쇄 조치와 경제적 지원은 독일 경제와 사회적 안정을 지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백신 접종 프로그램을 통해 팬데믹의 확산을 통제하는 데 성공했다. #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 글로벌 금융위기, 건강보험 개혁, 외교 정책서 성과 빛나다 버락 오바마(Barack Obama)는 제44대 미국 대통령으로 재임하며 글로벌 경제위기와 국내외적인 사회, 정치적 위기를 수차례 극복했다. 오바마는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직면했던 여러 도전 과제들을 효율적인 리더십과 협력적인 접근을 통해 해결하려고 노력했고 그의 리더십은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건강보험 개혁, 외교 정책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오바마케어 2008년, 미국을 포함한 세계 경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붕괴와 함께 발생한 금융위기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은행 시스템 붕괴, 실업률 상승, 주택시장 침체 등으로 경제는 급격히 후퇴했고 오바마가 대통령직을 맡기 불과 며칠 전인 2008년 11월에는 경제가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 취임 직후 경제회복을 위한 1조 달러 규모의 경기 부양책인 ‘미국 회복과 재투자법(ARRA)’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대규모 정부 지출과 세금 감면, 주택 지원 프로그램 등을 통해 경제를 부양하고 실업률을 낮추려 했다. 은행 구제를 위한 대책을 마련해 TARP(Troubled Asset Relief Program)을 통해 부실한 금융기관들에게 자금을 지원했다. 이를 통해 금융 시스템의 안정을 꾀하고, 신용 시장의 위축을 막았다. GM과 크라이슬러 등 주요 자동차 제조업체들에 대한 구제 금융을 지원해 미국 자동차 산업의 회생을 도왔다. 이로 인해 수많은 일자리가 보존되고 산업이 다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도드-프랭크 법 (Dodd-Frank Act)을 제정해 금융 규제를 강화하고 ‘대형 금융기관’에 대한 규제를 도입해 시스템 안정성을 높였다. 미국의 건강보험제도는 고비용과 불평등한 접근 문제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못하거나 과도한 비용 부담을 안고 있었고 이는 보건의료 시스템의 큰 문제로 부각됐다. ‘Affordable Care Act(ACA)’, 즉 오바마케어를 통해 건강보험 개혁을 단행했다. 이를 통해 저소득층과 취약계층도 보편적으로 건강보험을 제공받을 수 있도록 했다. 또 보험사의 규제 강화, 보험료 상한선 설정, 국가 건강보험 마켓플레이스 구축 등을 통해 건강보험 접근성을 높였다. ACA는 미국인에게 건강보험에 가입할 의무를 부과하며 보험 미가입에 대한 벌금도 부과했다. 이를 통해 건강보험 가입률을 높이고 전체 의료비용을 낮추는 효과를 얻으려 했다. ACA는 Medicaid 프로그램의 대상을 확장해 저소득층의 의료 접근성을 높였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란 핵 협상 및 시리아 내전 재임 기간 동안 이란의 핵 개발과 시리아 내전은 중요한 외교적 위기로 떠올랐다. 이란의 핵 개발은 중동과 국제사회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었고 시리아 내전은 IS(ISIS)의 등장과 함께 국제적인 안보 위기를 불러왔다. 이란과의 핵 합의는 오바마의 외교적 승리로 평가됐지만 시리아 내전은 그렇지 못했다.
입력 2025. 03. 26. 01:44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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